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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사법농단' 사태로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재판이 중단된지 9개월 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. 사진은 지난해 3월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첫 정식 재판에 출석하는 임 전 차장의 모습. /이선화 기자USB 등 미뤄둔 서증조사 진행…10일 보석 심문[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=송주원 기자] "피고인, 건강 상태는 어떠십니까?" (윤종섭 부장판사)
"특별히 (아픈 곳) 없습니다." (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)
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재판이 잠정 중단됐던 임종헌(61·사법연수원 16기) 전 법원행정저 차장 재판이 9개월 만에 재개됐다. 임 전 차장은 대법원에 재항고까지 제기할 정도로 기피했던 재판장 윤종섭(50·사법연수원 26기) 부장판사에게 허리숙여 인사했고, 윤 부장판사는 "건강은 좀 어떻냐"는 안부를 물었다. 어색한 기류도 잠시 재판기록만 수만 건에 달하는 만큼 서증조사가 서둘러 진행됐다.
서울중앙지법 제36형사부(윤종섭 부장판사)는 9일 오후 2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임 전 차장의 25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.
임 전 차장은 양승태(72·2기) 전 대법원장 지시 아래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2018년 11월 구속기소됐다.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오다 지난해 6월2일 윤 부장판사를 향해 "피고인을 범죄자로 처단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"며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다. 한 달 뒤 법원은 "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없다"며 기피 신청을 기각했다. 임 전 차장 측은 즉시항고·재항고를 거듭했지만 결국 지난 1월 대법원이 최종 기각하면서 윤 부장판사와 재회하게 됐다.
신종 코로나바이러스(코로나19) 여파로 재판부를 제외한 검사 10명과 변호인 2명, 방청객 30여 명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. 임 전 차장 역시 마스크를 쓴 채 법정에 들어섰다. 9개월 전과 마찬가지로 수의가 아닌 정장 차림에 수북한 서류 뭉치를 품에 안은 채였다.
임 전 차장은 입정하며 윤 부장판사를 포함한 재판부를 향해 허리숙여 인사했다. 윤 부장판사는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지만 "건강은 좀 어떠하냐. 마스크 쓴 채로 재판에 임해도 된다"고 말을 건넸다. 임 전 차장은 "특별히 (아픈 곳은) 없다"고 짧게 답했다.
이후에는 9개월간 묵혀둔 서증조사를 진행했다. 임 전 차장 사건의 재판·수사기록은 수만 건에 달한다. 기피 신청으로 재판이 중단되기 전에도 변호인단은 "재판 진행이 너무 빡빡하다. 직전 재판에 봤던 서류 내용도 다 까먹었다"고 재판부에게 직접 호소할 정도였다. 이날 재판 역시 검찰은 "지금 보고 계신 것 맞냐"는 재판부 질문에 놓친 증거기록을 찾느라 수 분간 정적이 흐르기도 했다.
'사법농단'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54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. /뉴시스재판부는 지난해 5월 30일 공판 이후 검찰과 변호인 양 측이 제출한 의견을 청취한 뒤 증거 채택 여부를 결정했다. 검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핵심 자료 USB를 놓고 변호인단은 여전히 "적법하게 수집된 자료로 볼 수 없다"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재판부는 일부는 증거로 채택했다.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사무실 내 컴퓨터에서 확보한 증거고, 임 전 차장 역시 이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이유다.
또 재판부는 앞서 임 전 차장 측이 청구한 보석에 대해 10일 별도로 심문 기일을 열고 석방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. 임 전 차장은 지난해 5월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됐지만 재판부 기피에 따른 재판 중단은 구속기간에 포함되지 않아 여전히 수감된 상태다.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 중 구속된 이는 임 전 차장이 유일하다.
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에게 "보석 사유는 물론 지난해 5월 발부한 구속영장에 기재된 공소사실과 관련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지 보석 심문에서 의견을 밝혀달라"고 당부했다.
임 전 차장의 속행 공판은 16일 오전 10시로, 향후 공판 진행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.
ilraoh@tf.co.kr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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